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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2.10 아비와 아들.
- 2007.09.09 Cháu yêu mẹ.
- 2007.08.21 ASIAN CUP 그리고 Hồ Chí Minh
글
Cháu yêu mẹ.
시집 온 베트남 여성의 국적 포기, 그리고 한국 국적 취득이라는 국제결혼의 핵심적 문제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최근 논의되는 "다문화주의"열풍의 관점에서 한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듯.
몇년새에 이곳저곳 "다문화주의"에 대한 캐치프레즈를 내건 연구소가 많이 들 생겼다는데 놀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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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살이 10년' 베트남 엄마의 소원> |
[연합뉴스 2007-09-09 05:20] |
"아이들마저 엄마의 나라를 창피하게 여겨 너무 안타깝죠"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 "우리 아이들이 베트남어로 `엄마 사랑해요'란 말을 하는 걸 듣고 싶은 게 지나친 욕심인가요?"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소가 지난 6월 실시한 `제1회 모국어로 쓰는 나의 서울살이 체험담' 현상 공모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베트남 출신 원옥금씨. 한국으로 시집온 지 10년째인 원씨는 8살과 6살짜리 아이들이 자신의 모국인 베트남에 대해 무관심과 편견으로 가득찬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은 어머니 나라의 말인 베트남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 하고 딱 한번 다녀온 베트남에 대해서 좋지 않은 기억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원씨는 "아이들은 점점 자라는데 베트남어로 엄마와 대화하지 못 하는 현실이 참 견디기 힘들어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한국어로는 다 표현이 안 돼 답답하기도 하고 한국어로만 대화하니 내 아이지만 가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해요"라고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엄마의 권리'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건 자신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한국 남편과 시부모는 아내와 며느리가 손자들에게 `엄마 나라의 말'을 가르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이 베트남어를 배우면 한국어를 익히는 데 지장이 있고 친구들에게 차별과 따돌림을 당할까봐 걱정들을 해요. 한국의 언어와 문화가 베트남보다 월등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시부모도 아이들에게 베트남어보다 차라리 영어를 가르치라고 했다고 전했다. 원씨는 가정뿐 아니라 베트남의 가난과 전쟁에만 주목하는 사회로 인해 아이들이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어할까봐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원씨가 절반은 베트남인이라는 얘기를 해주면 아이들은 "나는 한국 사람이지 베트남 사람이 아니야"라고 항변하고 베트남어를 공부해야 친척과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하면 "베트남은 덥고 지저분해서 가기 싫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들에게 베트남이 또 다른 조국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엄마의 정다운 목소리를 들으면 정서가 안정된다고 합니다. 어설픈 한국어로 아이에게 말하지 말고 엄마의 사랑이 가득찬 모국어로 마음껏 전달해야 우리 아이들이 커서 한국과 베트남의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할 보배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소는 서울시 여성발전기금의 지원으로 수기를 공모했으며 베트남과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기혼 여성 이주자 50여명이 공모에 응했다. 연구소는 오는 14일 오후 교내 백주년기념관에서 시상식을 열고 원씨 등 10명에게 상을 수여한다. engi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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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ASIAN CUP 그리고 Hồ Chí Minh
"군대에서 축구한 기억"만큼 인생의 트라우마가 없다고도 생각할 만큼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축구를, 어쩔수 없이 보게 되긴 한다. "따 당하기" 싫어서. 사실 오늘날을 살아가는 "남자라면" 당연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압박과 강박이 축구를 통해서 주어질 때 난감하다. 그 시간대에 나 혼자 할일도 별로 없고, 게다가 국가 대항전의 시기에는 자칫 잘 못하면 "비애국자" "사회 부적응자"로 몰리기 쉽상이니까.
한국도 때론 마찬가지지만, 베트남의 축구열풍은 더더욱 이해가 잘 안갈때가 많다.
작년 독일 월드컵때 베트남에 있을 때, 텔레비젼은 온통 월드컵 중계와 그 예고로 가득차 있었고, 밤시간 시내의 카페와 바들은 중계시간만 되면 모든 음악을 중지하고 축구중계 시청 모드로 손님들을 내몰았다. 심지어는 나이트클럽 마저도 디제이가 음악을 중지하고 정숙한 분위기를 연출했었으니, 축구의 세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실로 불가능했다.
자국 팀이 진출하지도 못한 (실제로 대부분 기대조차 안했던) 국제경기에 그렇게 광적인 사람들을 보며 갸우뚱 거릴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긴 티벳의 스님들도 "월드 컵"에 대한 열광에 수도와 정진을 멈추는 세상이니 별로 특별할 것도 없을 터이지만, 그래도 "지구촌 축제" 같은것은 꾸베르탱 남작이 귀족적 취미에서 제창하신 올림픽 같은데서나 가능한 것 아닐까도 싶고, 시쳇말로 보는사람 즐거우면 다된다지만, 월드컵이야 "유럽패권"적 사설리그 아니던가? 이런 푸념도 사실 자국의 팀이나 선수를 중심으로만 스포츠를 즐기도록 세뇌당한 내 감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작년 여름내내 나는, 내 임무였던 "진지한 대화" "정보 수집"을 포기하고, 이들의 단순한 여가 생활에 대한 답답함에 짜증을 내다가,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의 "세계화"에 대한 열망을 가슴 싸하게 지켜보곤 했었다.
꼭 축구 시즌이 아니어도, 베트남에서는 카페에 앉아 "국제 축구지" Báo Bóng Đá Quốc Tế 를 읽고 있는 젊은 남자들을 찾아 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고, 유럽 프리미어 리그의 한팀을 자신의 팀으로 여기고 있는 남성들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팬덤의 세계도 오묘한 세계지만, 맨체스터 유나티드를 자신의 팀으로 여기고 있는 내 베트남 친구를 보면 이게 무슨 세계화의 장난일까 싶다.
물론 한국의 K 리그가 있듯, 베트남 내에도 국내 축구리그가 있지만, 그것은 아직 불법 도박의 대상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 있지는 않은 상태이다.
어쨌든 올해는 축구 광풍을 좀 벗어나서 다른 이야기를 베트남인들과 저녁시간 때 해볼 수 있겠다 했더니, 웬 걸 또 올해는 무슨 "아시안 꿉 Asian Cúp" 을 베트남에서 한다는게 아닌가?
절망 스러웠다. 아시안 컵은 또 무슨 축구잔치더냐?
여름 밤 놀거리, 볼거리가 있어야 하겠지만 축구말고 정말 딴 건 없는거냐?
그런데 난리가 났다. 베트남이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 축구대회 2회전에 진출한 것이다.
2회전 진출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하노이는 난리가 났다.
경기가 열리는 미딩 경기장 ( Sân Vận Động Mỹ Đinh )에 오토바이를 끌고 몰려든 붉은 티셔츠의 젊은이들이 넘쳐났고, 한국의 붉은악마를 모방한 응원방식도 선을 보였으며, "훌리건 따라하기"의 하나로 경기 후 밤새 오토바이 경적을 울리며 주택가를 떼로 돌아다니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이 모든 것이 다 베트남 역사상 처음 있은 일이었는데, 여기서 내 눈을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Hồ Chí Minh 초상화였다. 베트남 국립 경기장인 하노이의 "선번동 미딩"의 한쪽 지붕 위에는 대형 호치민 초상화가 내걸려 있다.
호치민 경기장이 아님에서야 조금 거북스러울 수도 있는 초상화인데, 더 재밌는 것은 응원전을 펼치는 베트남 관중들의 손에 항상 "호치민 액자"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 장면을 처음 본 것은 국제 친선 농구경기 중계를 볼 때였는데, 그때는 그저 피식 웃고 지나갔다. 한데 축구경기장에 등장한 "호치민 액자"를 보면서 부터서는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하는 구체적 물음이 생겨났다. 사실 기술적으로 대형 호치민 초상 프린트였으면, 운동선수 프린트를 내거는 것 마냥 그러려니 할 수도 있을 터였는데, 집에 모셔둘만한 액자를 들고 나온 것은 뭔가 "코믹"하면서도 "경건"해 보였다.

중국에서 마오가 컬트화 되고 있다지만, 마오 액자를 들고 운동장에 나오지는 않을텐데.
게다가 그들이 응원가로 부른 노래는 " 대승리의 기쁜날 호 아저씨와 함께 " Như có Bác Hồ Trong Ngày Vui Đại Thắng 이란 노래였다. 베트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노래가 경기장에 울려퍼지며 호치민의 액자가 흔들어질때, 팔은 안아플까 하다가도 묘한 느낌이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그들에게 호치민과 사회주의와 그들 현재의 삶을 이어주는 고리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민족주의와 역사는 세계화의 시대에 "유희"적 가치로 또 재생산 되는 것일까?
내가 축구만 좋아했어도 현지에 있을 때 좀 더 파헤쳐 볼 수 있었을 텐데, 시니컬함은 역시 사후적 과제를 산더미로 남겨 놓는다.
끝내기 전에 하나 더. 베트남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노래, "대승리의 기쁜날 호 아저씨와 함께"
쿵짝 쿵짝 쿵짜자작 짝 풍인데...
그거야 그렇고 역시 가사는 짧고 간결해야 국민가요가 될 수있는 듯.
(사족인데 어차피 1절만, 길어야 2절 까지 밖에는 안부를 애국가를 4절까지 만든 한국은 뭘까? 지적과잉과 국가주의적 안달이 조합한 산물이 아닌가? 아 참! 국기의 대한 맹세문이 최근에 좀 나아졌더군!)
Sáng tác: Phạm Tuyên
Thể hiện: Tốp ca nam nữ Nhạc viện Tp HCM
Lời Bác nay đã thành chiến thắng huy hoàng.
Ba mươi năm đấu tranh giành toàn vẹn non sông,
Mười năm dân chủ cộng hòa kháng chiến đã thành công.
Việt Nam Hồ Chí MInh. Việt Nam Hồ Chí Min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