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베트남 새댁은 똑순이 부녀회장

Người Việt 2006. 11. 5. 10:46
"베트남 새댁은 똑순이 부녀회장"
[중앙일보 장대석.김방현] 3일 오전 11시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산남리 들녘. 참깨를 수확하고 있는 유일선(68)씨 부부에게 도우미가 찾아왔다. 마을 부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오진주(22)씨. 베트남 출신인 그는 3년 전 이 마을 김정기(39)씨와 결혼했다. 성격이 활달하고 마을에서 가장 젊다는 이유로 올 1월 만장일치로 부녀회장에 선출됐다. 오씨는 유씨 부부에게 "어르신들 도와드릴 거 없나요"라며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씨가 "도와주면 좋지만 미안해서…"라고 말하기 무섭게 오씨는 방망이로 '툭툭' 쳐서 참깨를 털었다. 수확이 끝나자 노인들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말벗이 됐다.
그는 "주민 대부분이 50대 이상 노년층이어서 일손이 부족해 아우성"이라며 "젊은 부녀회장이 모른 체할 수 없어 틈틈이 이웃을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은 57가구, 113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골마을이다.

오씨의 본래 이름은 '응우옌테이 럽벗비취'였다. 한국 이름은 남편의 선배가 이름 끝자가 보석 이름과 같다며 '진주'라고 짓고 성씨는 감탄사 '오~'에서 따왔다고 한다.

농촌에 외국인 부녀회장이나 이장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농촌총각들의 국제결혼이 늘어난 데다 농촌에 젊은 사람이 부족한 데 따른 현상이다. 원광대 채옥희(가정복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열린 민족주의, 열린사회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 농촌에 새로운 활력소=전북 김제시 용지면 효정마을의 마쓰나 가쓰코(34.일본인)씨도 3년 전부터 부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3년 전 결혼해 남편과 함께 농사 50여 마지기를 짓는 그는 격월로 부녀회를 개최하고 봄.가을 경로잔치를 열기도 한다. 주민들은 "시부모를 잘 모시면서 동네 일을 똑부러지게 본다"고 칭찬했다. 전북 익산시 성당면 내갈마을 주부이장 박원복(38)씨는 옌지(延吉) 출신의 중국동포다.

외국인 여성들의 부녀회장 취임은 올 들어 두드러졌다. 85가구 3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둔일리에서는 오가와 데루요(45.일본인)씨가 1월부터 부녀회를 이끌고 있다. 전남 해남군 옥천면 흑천마을의 주민들은 2월 일본인 소메야 유코(38)씨를 부녀회장으로 추대했다.

전종석 익산시 성당면장은 "젊은 외국인 주부들이 마을을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해 주민들도 '잘 도와주자'는 분위기"라며 "이들의 활동이 농촌마을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외국인 부녀회장들은 문화적 차이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중국동포 주부이장 박원복씨는 "면내 이장 24명 중 홍일점이라 회식 때 소외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본인 부녀회장인 오가와씨는"한국어가 서툴러 의사소통이 잘 안 돼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 "농촌 경제활동의 주요 세력"=국제결혼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인 여성은 2001년 1만6명에서 지난해 말 현재 3만1180명으로 5년 새 세 배가량 늘었다. 전북 장수군 민들레 국제결혼 이민자가족 자원센터 이현선(43)소장은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여성들은 경제활동 인구의 주요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농촌의 중심 역할을 하는 지역 리더나 원어민 강사 등으로 활용하기 위한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주.옥천=장대석.김방현 기자 dsjang@joongang.co.kr ▶김방현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bhbhk/

[내 손안에 정보 조인스 모바일 2442+ NATE/magicⓝ/ez-i]
[ⓒ 중앙일보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앙일보   2006-11-04 04:52:30

설정

트랙백

댓글

Anh lái xe..

Người Việt 2006. 6. 23. 16:34


운전기사 아저씨.
나와 Thắng이 Vinh을 다녀오는 내내 차를 몰아 줬다.
"젊었을땐 여자 좀 후리"셨다는, 인상 좋은 아저씨였다.
딸하나 아들하나 있다는데, 딸은 지금 한국에 있단다. 왜 한국에 있는지는 못 물어봤고, 말도 안해줬다.
아들은 지금 중학생이라던가?
하여간 눈웃음에 짙게 패인 주름과 근육, 젊은시절의 상징이 되어버린 문신이 인상적인 아저씨였다.

운전 솜씨는 팔뚝에 새겨진 문신보다도 더 예술적이었는데,
베트남에서 호치민 시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1A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야간에 추월하는 솜씨는 여행내내 나를 롤러코스터 위에 앉아있는 기분으로 만들어 줬다.
난 "형아 달려!" 한 적이 없었는데...

어차피 안죽으면 사는게 인생인 것을....
어차피 죽자고 살아가는 삶인것을..

설정

트랙백

댓글

Vietnamese Guest Workers in Germany

Người Việt 2006. 2. 5. 19:57
BBC 뉴스를 보니,
동독에 와 있던 베트남 산업연수생(Guest Worker)이 통독 이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상당수 남아 있단다.
문제는 통독이후에 이들의 생계수단이 사라지고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가, 대부분 독일어를 하지 못하는 상황때문에 취업이나 심지어는 자녀와의 대화에도 문제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베트남전 이후 구소련과 동독에 상당수의 산업연수생이 나가 있었다는 사실을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Paradise of the Blind 라는 소설에는 구소련에 나가 있던 여공이 주인공이었고, 러시아의 경우에는 인종차별 문제가 종종 보도되어 베트남 산업연수생의 잔존이 알려진 반면, 동독은 무관심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던 듯.

지난 토요일 독일에서 온 교환 학생인 카트리나와 이야기 해 보니,
동독출신인 그녀에게 독일 통일은 아직도 "통일"이 아닌 합병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통일"이후 직업을 잃었고, 생계조차 막막한 상황이란다.
이제는 그런 문제가 이슈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일까?
GOOD BYE LENIN~


생각해 보니 베트남사람들이 동독에 가 있을 때, 우리는 서독에 광부, 간호사들 나갔었다. 이른바 "동백림" - 동베를린- 사건도 터지고 그러면서 상당기간 본국과 단절된 채 살았다는 데..

남기를 결정한 베트남 사람들이 독일에서도 그들의 설날 행사를 여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에서 이젠 그마저도 희미해져 가는 미국의 한인사회와 비교해 보게된다.

Connectivity 가 상대적으로 더 열려있기 때문일까?
그럼 중국인들은?

어쨌든 언젠가 사회주의 국제주의를 다루면서 한번 쯤 생각해 봐야할 주제인 것 같다.

설정

트랙백

댓글